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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메르스가 오다.

"메르스 환자 도착 10km 전입니다", 이송 차량과 실시간 통화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2015년 5월 29일 명지병원에 입원한 첫 번째 메르스 확진자는 평택의 한 병원에서 전원된 A씨였다. 국내에 메르스 환자가 처음 확진된 20일 이후 9일 만이다. 이송 당시는 아직 의심 환자 상태였으나 그간 환자가 머물렀던 장소나 주변인 상황, 증세 등을 감안할 때 확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판단됐다. 실제 이 환자는 입원 후 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평택에서 출발한 환자 이송 차량은 명지병원까지의 거리를 좁히면서 실시간으로 남은 거리를 알려왔다. 병원 측은 이를 통해 환자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외부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서로 호흡을 맞춰 환자를 음압 격리 병상으로 입원시키고 했다. 병원까지 10km가 남았다는 연락이 왔다. 10분 정도면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다. 이에 의료진과 간호사들이 보호구를 착용했고, 소독 담당자는 자신의 위치를 찾아 기다렸다. 동시에 차량 관리원은 명지병원의 외부 검진 시 사용하는 대형 버스를 이용해 음압 격리 병상이 있는 건물 입구를 막아섰다. 일반 외래객들의 이동 경로와는 다른 출입구지만 멀리서라도 메르스 환자가 오는 것을 일반인이나 환자들이 목격하고 나서 발생할 수 있는 동요와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감염성 질환 신속대응팀(CDRT)  팀원들은 메르스 확진자를 전원 받는 모든 절차를 모의훈련 당시와 똑같이 신속하게 진행했고 환자를 음압 병실로 신속히 안전하게 이동시켰다. 그 동선을 따라 총무팀 소독 담당자가 이동하며 행여 있을지 모를 바이러스 오염을 막기 위해 멸균 소독 처리했다. 이런 절차는 지난해 신종 감염병 대비를 위해 훈련했던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었다.

치사율 40% 공포와 처음 마주친 의료진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모두들 메르스 환자는 처음이었다. 보호장구를 입고 실제 진료에 임한 것도 처음이었다.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음압 병상에 입실하기 직전, 의료진과 간호사들은 예정대로 레벨 C 등급의 보호구를 착용했다. 속 장갑, 보호복, 덧신을 차례대로 착용하고 전동식 호흡 장치를 매달고 마지막 겉 장갑까지 모든 보호장구를 껴입자 체온과 날숨 때문에 고글 안으로 금세 습기가 차올라 시야가 가려졌다. 훈련 때에도 수없이 입어본 보호구였지만 이제는 마음이 달랐다. 뿌옇게 시야가 흐려지면서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고 한다. 치사율 40% 메르스의 공포와 마주친 첫날이었다.

의료진이 격리실 안에서 환자를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환자가 들어왔다. 격리병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앞뒤로 두 개의 자동문이 설치된 클린 존(Clean Zone)을 우선 통과해야 한다. 클린 존의 첫 번째 문이 열리고 환자가 앉은 휠체어를 밀며 들어서는 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첫 번째 문이 닫히자 곧바로 두 번째 문이 열리면서 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환자는 흘러내린 마스크 옆으로 구토하며 들어섰다. 당시 환자를 받은 한 간호사는 "구토를 하는 환자의 괴로움보다는 행여나 구토물이나 바이러스가 나에게 위험을 가할까 봐 덜컥 겁이 났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환자를 진정시키고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하던 중 두 번째 환자가 들어왔다. 이 환자는 증상이 훨씬 심해 보였다. 고열에 근육통과 오심, 구토, 호흡곤란 등으로 상당히 힘들어하는 환자였다. 두 번째부터는 의료진들이 조금 더 침착해질 수 있었다. 현장에 있던 간호사는 "빨리 수액을 달고 증상 조절을 해 드려서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격리병실 감시카메라에서 사라진 간호사

간호부에서 일상적으로 하던 일들도 격리병동에서는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외부 공기와 차단된 보호복은 호흡을 어렵게 했고, 산소 공급을 위해 장착한 전동식 호흡장치(PAPR; Powered Air Purifying Respirator)는 계속해서 윙윙거리며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무게감마저 더해가며 기운을 뺐다. 환자에게 빨리 수액을 놓아주고 싶다는 것은 오직 마음뿐, 평소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니 마음은 애가 타고 동작은 더욱 느려져만 갔다. 긴장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호복 내부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 탈진 증상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중 장갑을 낀 양손의 손가락 하나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것 같았다.

음압병실에 투입돼 첫 환자를 돌보던 박미연 병동 팀장은 "설상가상으로 정맥 주사로 확보(IV start)를 시도하던 중 주삿바늘이 제 장갑을 찔러 장갑이 찢어지고 맨살이 드러났을 때는 아찔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온몸에 땀이 흥건한 상태이다 보니 장갑을 새로 끼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이후 박미연 팀장은 격리 병실을 비추는 감시카메라 화면에서 한동안 사라졌다. 격리 병실 밖에서 긴장의 눈으로 지켜보던 의료진도 당황했다. 훗날 박미연 팀장은 "장갑이 찢어진 순간 너무 당황이 되고, 두려워서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에 가서 웅크리고 앉아 울었다"고 전했다.

박 팀장은 다시 장갑을 착용하고 주사로를 안전하게 확보했지만 들어본 일도 없고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이 모든 과정이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다. 박미연 팀장이 PAPR이 장착된 레벨 C 등급의 보호구를 착용한 채 음압 병동 내에서 환자를 돌본 시간은 대략 6시간 정도였다. 박미연 팀장은 젊은 간호사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솔선수범해서 자발적으로 제일 먼저 격리 병실로 들어간 것이다. 박 팀장은 위중한 환자 앞에서 혼신을 다했던 그 6시간이 잠깐의 순간처럼 지나갔다고 말했다.

"저희 도망 안 가고 나이트 근무 출근할게요."

메르스 환자를 받기 이전 시점, 자신들이 근무하는 격리 병동에 메르스 환자가 입원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간호사들은 두려움과 부담감에 휩싸였다. 음압 병동에 누구를 투입할지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최종 결론은 해당 병동에 원래부터 근무하고 있던 간호 인력이 그대로 지키로 했다.  다만 부족한 인원만 다른 병동에서 지원받는다는 원칙이었다. 일부는 경험 많은 간호사들을 차출해 투입해야 한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한 간호사들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사태가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인력 조정은 오히려 대응에 혼란만 가져올 것이라는 의견이 가장 설득력 있었다. 장기전에 돌입하면, 팀장급 간호사가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가 있었다.

간호사들은 '나도 감염이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부터 '내 가족에게 옮길 수도 있는데', '내가 그만한 사명감이 있나', '사직을 해야 하나' '왜 하필 나인가?' 등의 생각으로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메르스 환자를 받기 이전에 재교육을 받고,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간호부 안팎의 격려를 받는 중에 서로 하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한 간호사는 퇴근 전 "팀장님, 저 도망 안 가고 오늘 나이트 출근 꼭 할게요"라고 말해 병동 팀장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게 한 순간도 있었다. 철저한 준비를 한 상태라고 해도 정체불명의 신종 감염병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병원 경영진과 의료진, 간호 행정직 모두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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