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실전처럼 치른 모의 훈련

"50분 내에 모든 상황을 정리하라"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CDRT 조직을 주축으로 한 '신종 감염병 유입 대비 모의 훈련'은 2014년 10월 29일 오후 명지병원 원내에서 진행됐다. 그달 24일과 27일에 두 차례의 예비 훈련을 거쳤고 실전 개념인 세 번째 훈련은 실제 상황과 거의 동일하게 행해졌다. 훈련 시간은 병원에 외래객이 없어 조용한 아침 일찍이나 저녁 즈음으로 정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회의 과정에서 평일 오후 3시로 최종 결정됐다. 실제 내원객이 있는 상황에서 훈련해야 실제 상황에 더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원내에 방송과 안내문을 통해 '모의훈련 중'임을 알리는 사전 고지를 하여 외래 및 입원 객들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했다.

10월 29일 15시, 원내 방송으로 감염병 환자 발생을 알리는 'cord gray' 방송이 전파를 타면서 모의 훈련이 시작됐다. cord gray 경보를 접한 CDRT 구성원들은 레벨 C 등급의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신속히 현장으로 투입됐다. 감염병 환자 발생 현장은 감염내과 외래. 현장에는 모의환자가 있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의 감염의심자로 분류돼 CDRT에 의해 이송됐다.

훈련은 실제와 가능한 한 똑같이 운영되도록 했으며 빠른 대응이 중요했기 때문에 제한 시간인 50분 이내에 환자를 안전하게 음압격리 병상으로 입원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모든 훈련 과정은 사전에 최소 5분 단위로 치밀하게 준비된 'CDRT 모의훈련 시나리오'대로 정확히 시행돼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시나리오에는 장소와 상황, 각 담당부서와 담당자, 행동 수칙, 대화 및 준비 물품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훈련은 성공적으로 종료됐고 이제 명지병원은 주간과 야간, 외래와 병동, 응급실 등 언제 어디에서 신종 감염환자가 발생해도 매뉴얼대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보호복을 레벨 D에서 C로 올린 이유

10월 29일 모의훈련 과정은 체크리스트와 동영상으로 빈틈없이 기록됐다. 모의 훈련 내내 평가팀이 32개 문항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들고 각 파트별 담당자들을 따라다니며 각 사항을 체크했고 동영상으로도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훈련 이틀 뒤인 10월 31일 열린 평가회의에서는 개선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 개선안은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였다. 의료진이 방호복과 N95 마스크, 안면보호대 등을 착용한 상태여서 환자 및 보호자와의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온 안은 확성기를 사용하자는 것. 하지만 확성기를 사용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나온 안은 필담(筆談)으로 의사소통하는 방법이었다. 이후 의료진이 노출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해야 할 때에는 환자가 직접 하도록 유도하고 보조적으로 확성기를 사용하는 안이 채택됐다.

모든 CDRT 팀원 및 병동 의료진의 방호복 등급을 높여야 한다는 안도 나왔다. 처음 훈련에 사용됐던 방호복은 레벨 D 등급이었으나 입거나 착용하는 중에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의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실제 현장에서 매우 당황할 사태가 미리 점검된 것이다. 훈련 과정인데도 환자 응대를 위해 움직이다가 맨살이 노출되는 일도 생겼다. 이래서는 안심하고 환자의 이송이나 치료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결국 최소한 레벨 C 등급의 방호복을 착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2015년 실제 메르스 확진자를 받을 때에는 모두가 레벨 C 등급의 방호복을 착용하게 됐다.

환자 이동 동선도 처음 구상과는 달라지도록 했다. 초기에는 외래에서 감염 환자 발생 시 일반인들과의 접촉이 최소화되도록 격리 병동까지 인적이 없는 우회로를 크게 돌아가도록 계획했으나 레벨 C의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너무나 무리한 경로임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가장 빠르면서도 일반인들과의 접촉을 가능한 줄일 수 있는 경로 확보 방안이 논의됐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감염관리실에 있는 여행용 가방의 정체는?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대규모 모의 훈련을 시행하고, 여기에서 체크된 내용을 바탕으로 평가 회의를 거치면서 도출된 개선사항들을 마련하면서 명지병원의 메르스 대응 시스템은 좀 더 구체적인 모양을 갖춰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준비된 마지막 물품은 두 개의 여행 가방. 흔히 여행용 캐리어라고 불리는 두 개의 파란색 가방이었다. 감염관리실 한쪽에 준비된 이 여행가방을 본 사람들은 "이곳에 이렇게 큰 여행 가방이 두 개나 왜 있나요? 안에는 뭐가 들었나요?"하고 묻곤 한다.

이 가방의 용도는 바로 메르스 대처용이다. 신종 감염병 환자 발생 시 사용하는 '감염백'과 환자 이동 후 사용하는 '마무리백' 두 가지다. 감염백은 레벨 D 보호구 1개와 레벨 C 보호구 5개, 토시, 앞치마, N95 마스크, 보안경, 덧신, 안면보호대, 손소독제, 노출자 명단 장부, 무전기, PAPR 등으로 구성돼 있다. 크기 문제로 가방 내에 넣을 수 없는 PAPR 등 몇 가지만 빼고는 가방 안에 모두 들어 있다. 감염병 환자 상황 발생 시에는 해당 가방만 열면 바로 대응 준비를 할 수 있다.

마무리백에는 락스와 희석통, 바가지, 깔때기, 환경티슈, 스프레이, 손소독제, 폐기물 봉투, 격리폐기물통 등이 들어 있어 이들만 갖고 대처 후 마무리를 마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명지병원은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에 대해 조직과 훈련, 매뉴얼, 시설, 장비, 물품 등은 물론 대응 노하우까지 빠짐없이 준비하게 됐다.

신의 한 수, 형광물질 확인 검사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 실제 사용한 형광물질 세트 사진과 보호구 형광물질 확인하는 장면

레벨 C 방호복은 D보다 안전했지만 입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운 장비였다. 모의훈련 당시 방호복을 입고 환자 이송에 참여한 직원들은 훈련이 끝나고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방호복을 입고 뛰던 의료진 중 한명은 가빠오는 숨을 참지 못하고 모의훈련 장소를 잠시 이탈해 보호구를 벗었다가 숨을 고르고 돌아오기도 할 정도였다. 그 직원은 급한 나머지 마스크를 비뚤게 쓰고 나타나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증명한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일부는 모의훈련을 하면서 "체력이나 장비를 생각하면 신종 감염병 환자 받기 어렵겠다"는 농을 던질 정도였다.

조선일보 2015년 7월 1일 자 기사를 통해 소개되며 큰 관심을 끈 '형광물질 사용 훈련법'도 사전 준비 과정에서 나왔다. 모의훈련을 포함한 수차례의 훈련을 통해 보호구를 입고 벗는 과정에서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특히 확진자와 접촉하고 나서 방호복을 벗다가 감염 물질이 옷이나 피부에 묻을 수 있겠다는 우려가 컸다. 이에 대한 집중 훈련과 확인 검증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이에 응급의학과 차명일 교수가 보호복을 제대로 벗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방호복 훈련 시 벗기 전에 옷에 무엇인가를 묻혀 놓으면 되겠다는 것이었다. 감염 매개 바이러스 역할을 할 무엇인가가 방호복을 통해 피부에 묻는다면 그 부분에 대해 주의를 하고 다시 훈련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감염관리팀 홍혜경 팀장이 손 씻기 교육에 쓰는 형광물질을 떠올렸다. 손 씻기 교육을 할 때 형광물질을 손에 묻히게 하고 손을 씻게 한 후, 제대로 씻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형광 물질이 손에 얼마나 남았는지 형광 플래시를 손에 비추어 확인한다. 감염관리팀은 이 장비와 형광물질을 청소위생용품 판매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들였다. 손 씻기 교육 장비 한 세트에 5만원 정도다. 감염관리팀은 형광물질을 보호복 겉면에 묻히고 의료진이 보호복을 벗을 때 형광물질이 몸이나 옷에 묻어나는 지 플래시로 비추어 확인했다. 이런 방식으로 보호복 착탈복 훈련을 거듭함으로써 다들 능숙하게 보호복을 안전하게 갈아입고 벗을 수 있었다. 그렇게만 하면 아무리 전염성이 높은 감염병 환자라도 접촉 감염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홍혜경 팀장은 "CDRT 모의 훈련 시 경기도청, 보건소 등 보건 당국 관련 담당자들이 와서 시찰했는데, 보호구 벗기 전 형광물질을 바르고 벗은 후 확인하는 과정을 보시고 철저한 방법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며 "실제 훈련 과정에서도 참여자들이 조금 더 안심할 수 있고 훈련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장치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모의 훈련 관련 미니 인터뷰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라는 군대 구호가 진리라는 점을 새삼 깨달아"

총무팀 조영석 주임

메르스 환자 이동 시 소독 담당했던
총무팀 조영석 주임

모의 훈련부터 실제 확진자를 받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신 소감은 어떤가요?
"모의 훈련 때와 실제 상황 모두, 메르스 환자의 이동 동선을 따라 소독을 하여 발생할 수 있는 추가 감염을 원천 방지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환자 입원은 물론 퇴원 때에도 모든 동선을 소독해 의료진과 다른 분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모의 훈련과 실제 상황에서 느꼈던 차이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모의 훈련은 실수도 용납되고 다시 한번 해볼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상황에서는 저의 작은 실수 하나로도 나와 내 동료, 내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사전 모의 훈련을 해 본 것이 실전에는 도움이 됐다고 보시나요? 
"지난해 10월에 참여했던 사전 훈련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군 생활할 때 항상 듣곤 하던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라는 말이 진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연습 때처럼만 실전에 임한다면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역할은 특별한 전문 지식이 필요 없는, 몇 번 연습만 한다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저도 자연스럽게 최선을 다했던 것뿐입니다."
상대적으로 감염 위험이 적은 행정부서원인데, 메르스 확진자 동선이나 치료실에 들어섰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왜? 나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제 가족을 위해서라도 피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사장님이 말씀하셨던 ‘누군가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하자’라는 문구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보다 더 많이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던 저 자신에게 화가 나고, 제 아이들에게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연습했던 대로 개인 보호구 착용을 철저히 하면서, 열심히 소독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