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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혼란과 혼선, 위기

지도부의 판단력까지 감염시킨 메르스의 위력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우리는 메르스에 대비해 힘들게 준비하고 훈련해왔는데, 그건 우리 몇 명만의 이야기일 뿐 일반 직원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감염내과 이꽃실 교수)”
“메르스 치료에 대한 외부 공개는 불가능했어도 내부에라도 알렸어야 하나 후회가 됩니다. 하지만 다시 똑같은 상황에 처한대도, 공개라는 카드가 공익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당시 병원장 김세철(현 서남의대 의료원장)”

메르스 환자 입원 초기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발생한 병원 안팎의 혼란은 상상을 초월했다. 확진자를 전원받은 첫날부터 지역사회에 번지던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쏟아지던 문의에 대해 병원측의 답변은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없는 대답) 정책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가장 적극적인 대답이 “명지병원에서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이후 상황이 안정된 뒤에도 병원 지도부를 내내 괴롭힌 것은, 이처럼 초기 커뮤니케이션에 명확하지 못 했고 여기서 발생한 혼란이 위기감을 더 키웠다는 생각이었다.

메르스 초기에 정보를 공개하고 응대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당시 김세철 병원장의 말처럼 다시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꽃실 교수를 포함한 많은 일선의 의료진들 바람처럼 기본적인 정보는 공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소중한 교훈으로 남았다. 이에 따라 원내에 전문적인 조직과 매뉴얼, 안전한 시설이 있다는 사실은 메르스 사태를 지나는 와중에도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되기도 했다.

한편 메르스 환자가 명지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 전국적으로 사태가 점점 커지며 각종 루머가 난무하는데도 병원 경영진은 외부에 대해 적절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의료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고, 불안감은 증폭됐다. 다른 병동에 입원한 보호자 환자들이 계속 메르스에 대해 물어보는데 의료진은 아는 게 없어서 설명도 못 하고 답답할 뿐이었다. 한 직원은 "병원의 메르스 소식을 우리 직원이 먼저 알아야 하는데.. 네이버 검색으로 찾아야 하는 직원의 마음 아시나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 지적이 당시 상황의 핵심이었다.

의료진은 메르스 환자가 어떤 이유로 입원하는지도 몰랐다. 메르스 환자가 모두 퇴원하여 메르스와의 전쟁이 끝났다고 여길 때, 메르스 의심 환자가 다시 입원하여 병원은 재차 술렁거렸다. 대응에 대한 방향성을 찾은 병원 경영진이 이번에는 명지병원 전직원을 대상으로 SMS 문자를 발송했다. 내용은 이랬다. "전직원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 향후 메르스관련 사항은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현재 격리병동 입원 환자는 이미 5차까지 음성판정이 나온 환자로 일반적인 치료를 위해 입원한 것입니다. 앞으로 확진 환자 입원 시 직원들께 알리겠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슬기로운 대응을 이어 가시길 당부드립니다. - 병원장"

메르스 사태는 위기 시 관련 정보를 내부 의료진에게 어디까지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숙제로 남겼다. 메르스 환자 입원 초기에 상황별로 정보를 공개하고, 환자나 주변 지역 사회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질 때 응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면 이러한 혼선과 불안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병원 경영진에게 뼈아픈 지적이었다.

명지는 메르스 병원? 심상치 않은 지역 사회 분위기

첫 번째 메르스 환자를 무사히 음압병실로 수용했다는 안도감은 잠시였다. 5월말과 6월 초 명지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들끓기 시작한 지역 여론은 명지병원에 큰 시련으로 다가온 것이다. 고양시 기혼 여성 다수가 가입한 유력 인터넷 카페가 소문 확산의 근원지였다. 사실을 넘어 괴담과 악소문이 메르스 감염병보다 빠르게 퍼져 나갔다. 지역 주민들은 수시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왔다. 이들은 정말 메르스 환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확인이라기 보다는 따져 물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병원 직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병원 내 경영진과 일부 의료진만 메르스 환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던 탓인지, 불확실한 정보에 직원들조차 악성 괴담에 휘둘리곤 했다. 이점은 병원 경영진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다. 음압 병동은 완벽한 격리가 가능하고,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더라도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염될 우려가 없다고 자신했기에 일부 의료진만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괜스레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혼란만 더 일으킨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문은 불확실한 정보를 먹고 점점 커졌다.메르스 환자를 품은 명지병원은 지역 사회 내에서 점차 괴물로 인식되어 가고 있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발길은 일거에 줄어들었다. 아이들로 북적이던 소아과 외래는 하루에 한 두명 정도밖에 없을 정도였다. 병원 외래는 스산하기까지 했다. 6월 7일 부총리의 메르스 발생 병원 발표로 여론이 일부 환기되기 전까지, 명지병원을 향한 지역민들의 시선과 감정은 메르스 병원이라는 낙인으로 최고조에 달해갔다.

평소 주변 아파트 단지 주민이 편하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단지와 병원 사이 쪽문은 되려 아파트 주민들의 요구로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택시 기사들도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꺼려서 병원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손님을 내려놓는 일도 벌어졌다. 택시를 타고 명지병원 근방 지역으로 가자고 말했다가 승차 거부당하는 일도 생겼다.

명지병원 메르스 음해와 소송전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메르스 첫 환자가 입원한 5월말부터 메르스 사태가 전국적으로 퍼진 6월 초, 메르스 공포는 극에 달했다. 명지병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기야는 병원을 음해하는 보도나 인터넷 댓글과 소송전을 벌이게 됐다. 주로 일산 지역 주부들이 즐겨 찾는 회원수 10만명의 인터넷 카페 '일산 아지매'에 "명지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고, 사망했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명백히 사실과 달랐지만, 이 소식은 주부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병원은 해당 게시자에게 글을 내려달라고 요구했으나 즉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고발 조치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일산의 한 유치원에서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다짜고짜 '명지병원 메르스 의심'이라는 SMS 문자를 발송했다. 메르스 환자가 비록 입원해 있으나 음압 병실에서 격리 입원해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안전하고 피해가 없음에도 막연히 '의심'이라는 말로 마치 병원 전체가 위험한 양 공포감을 키운 것이다. 이에 해당 유치원에 항의하고 발송 중단을 요구해야 했다.

메르스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소문과 불안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병원 홍보팀 직원들은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을 뒤지며 명지병원 메르스 환자와 관련된 글이 올라오면 게시 중단을 요청하는 일에 24시간 매달려야 했다. 병원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커다란 붉은 글씨로 "본원은 메르스 발생 병원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한 허위 사실 유포는 법적 책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는 일종의 경고문까지 띄워야 했다. 아울러 경찰청 사이버 범죄 대응팀에 메르스 관련 악성 글에 대한 모니터링과 제재 조치를 요구했다.

'메르스 환자가 죽었다'는 괴소문

메르스 소문은 엉뚱한 곳에서도 불거졌다. 음압 병실 의료진과 메르스 환자들은 삼시세끼를 병원 식당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으로 때웠다. 바깥 출입을 삼갔던 의료진도 환자에게 제공되는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동고동락이 따로 없었다. 병원 식당에서 올라오는 도시락은 랩으로 포장돼 있다. 이를 음압 병실로 치료차 들어가는 의료진이 병실 안으로 배달해 주는 식이었다. 불필요한 음압 병실 출입을 줄여 감염의 기회를 줄이고자 식사 시간에 맞춰 환자 처치도 할 수 있도록 배정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일정한 개수로 음압 병실에 배달되던 도시락이 줄게 됐다. 의료진 일부가 도시락에 입맛이 물려 주문 개수를 줄인 것이다. 소통 부족이 괴소문을 이어진 순간이다. 식당에서 도시락을 만들던 조리원들이 술렁거렸다. 음압 병실 병동에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조리원들은 도시락 주문 개수가 줄자, 환자가 사망한 것으로 지레짐작했다. 명지병원 메르스 환자가 죽었다는 소문은 이렇게 어이없는 불통에서 비롯됐다. 메르스와 같은 치사율이 높은 감염병을 치료할 때는 사소한 오해가 큰 소문을 낳는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은 일이었다.

누나가 명지병원 간호사라는 이유로 조퇴 당한 남동생: 쏟아지는 메르스 낙인

명지병원 주변 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카카오톡을 통해 "명지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데, 누구 엄마가 명지병원에 다닌다고 하지 않았나요?"라는 식으로 '범인' 찾기가 횡행했다. 명지병원 아이들을 찾아서 학교에 등교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는 태세였다. 명지병원 의료진은 그런 카톡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마치 의료진이 메르스 숙주인 양 취급되는 분위기였다.

메르스 환자가 있는 곳이 어디냐에 많이 사람들이 온갖 관심을 가질 때였다. 명지병원에 다니는 누나를 둔 남동생은 회사에서 무심코 누나가 명지병원에 다닌다는 말을 했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조퇴 조치를 당한 일도 벌어졌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동생을 보고 그 간호사는 마음 아파했다.

예전에는 병원서 일한다고 하면 "고생이 많다"며 격려하는 식이었는데, 메르스 때는 위아래를 훑어보며 거리를 두고 떨어지는 행동을 보였다. 이에 일부 간호사는 "간호사 직업도 오래 할 게 못 되는구나"는 식의 자괴감을 가졌다고 했다. 아울러 나로 인해 내 가족과 주변 사람이 피해를 보는 미안함도 들었다고 했다.

메르스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보호자나 시민이 병원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과도한 불안과 공포, 분노는 죄다 메르스 의료진에게로 전이됐다.

병원 직원들도 동요, 과학도 공포 앞에선 맥 못 추어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메르스 환자 입원 정보가 일부 의료진에게 국한되면서 병원 직원들도 불안해했다. 치사율이 40%나 된다는데 과연 명지병원 의료진은 잘 치료할 수 있을까, 그들도 감염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병원 곳곳에 퍼졌다. 이 또한 소통 부족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명지병원이 국가 지정 음압 병실 운영 병원이고, 지난해부터 감염병 대응 훈련을 해왔고,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을 감염 관리 파트 의료진은 알고 있지만, 다른 부서들은 몰랐던 것이다. 메르스 정보 통제는 불안감을 키웠다.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다는데 몇 명의 환자가 있는지 다들 궁금했고 자신도 병원에 있다가 메르스에 걸릴까 봐 두려워하는 직원이 많았다.

병원으로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근거 없는 소문만 듣고 과도하게 항의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중은 명지병원 메르스 환자를 받아서 치료하는 곳인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곳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저 내 주변에 메르스 환자가 있는게 불안하고 싫은 것이다.과학도 공포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진료를 취소하는 사례가 급속히 늘었다. 그로 인한 의료진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전화로 처방해달라거나 팩스로 보내달라는 문의도 폭주했다. 간호부에서는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받는 전화가 메르스 때문에 병원에 못 오겠다는 전화였다. 병원에 갔다가 메르스에 감염되면 당신이 책임 질 거냐는 식으로 다그치는 이들도 많았다. 직원들은 다른 한편으로 환자가 이렇게 줄다가 월급이나 제대로 나올지 다들 새로운 걱정이 시작됐다. 환자가 줄어드는 만큼 의료진을 포함한 모두의 두려운 마음은 커갔다.

메르스 초기에 정보 공개와 응대 가이드라인 배포했어야

메르스 환자 입원 초기에 벌어진 불안과 혼선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의 명지병원 의료진조차 정보 공유 부족으로 답답해하고,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도 우리 병원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데 있었다. 사람들이 거기에 메르스 환자가 있느냐고 물어보는 데, 없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고, 괜찮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고 의료진은 입을 모았다. 명지병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슬슬 피하기도 했다.

메르스 환자가 명지병원에 입원해 있고, 전국적으로 사태가 점점 커지며 각종 루머가 난무하는데도 병원 경영진은 적절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의료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고, 불안감은 증폭됐다. 다른 병동에 입원한 보호자 환자들이 계속 메르스에 대해 물어보는데 의료진은 아는 게 없어서 설명도 못 하고 답답할 뿐이었다. 한 직원은 "병원의 메르스 소식을 우리 직원이 먼저 알아야 하는데.. 네이버 검색으로 찾아야 하는 직원의 마음 아시나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 지적이 당시 상황의 핵심이었다.

의료진은 메르스 환자가 어떤 이유로 입원하는지도 몰랐다. 메르스 환자가 모두 퇴원하여 메르스와의 전쟁이 끝났다고 여길 때, 메르스 의심 환자가 다시 입원하여 병원은 재차 술렁거렸다. 이번에는 병원 경영진이 명지병원 전직원을 대상으로 SMS 문자를 발송했다. 내용은 이랬다. "전직원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 향후 메르스관련 사항은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현재 격리병동 입원 환자는 이미 5차까지 음성판정이 나온 환자로 일반적인 치료를 위해 입원한 것입니다. 앞으로 확진 환자 입원 시 직원들께 알리겠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슬기로운 대응을 이어 가시길 당부드립니다. - 병원장"

메르스 사태는 위기 시 관련 정보를 내부 의료진에게 어디까지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숙제로 남겼다. 메르스 환자 입원 초기에 상황별로 정보를 공개하고, 환자나 주변 지역 사회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질 때 응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면 이러한 혼선과 불안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병원 경영진에게 뼈아픈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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