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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메르스 환자 모두 퇴원하던 날, 아뿔사! 격리병동 간호팀장의 고열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메르스 환자들이 완치되어 속속 퇴원하던 시점. 메르스와의 전투에 승기를 잡고 마무리 지으려는 시기에 음압병실 격리병동에서 메르스 환자를 돌보던 병동 간호팀장에게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모두 충격에 빠졌다. 만약 간호팀장이 메르스 감염자로 확진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은 것이었다. 의료진 감염 제로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간호팀장의 안위도 걱정해야 했다. 메르스 의료진이 환자가 되는 판국 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간호팀장은 간호파트 임원이었기에 병원장 등 많은 의료진을 수시로 만나 의견을 나눴다. 만약 그녀가 메르스 확진자가 되면 그녀가 접촉한 병원 경영진은 모두 격리 상태가 되어야 한다. 메르스 의료진과 경영진이 모두 격리되는 초토화가 벌어진다. 그날 밤 당시 병원장이었던 김세철 현 서남의대 의료원장은 불안감과 걱정에 한 숨도 못 잤다고 했다. 모두가 불안함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만한 돌발 사태였다. 간호팀장이 고열로 메르스 감염이 의심된다는 소식에 간호부에서는 눈물부터 터져나왔다.

간호팀장은 격리 병실에 입원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메르스 검사가 이뤄졌다. 모두 검사 결과를 숨죽이며 기다렸다. 다행히 연속해서 메르스 음성으로 나왔다. 의료진 사이에서 안도 한숨이 길게 나왔다. 간호팀장의 고열, 다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찔했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어린이집 난민이 된 병원 직원 아이들
"나오지 말라는 전화 받았다, 나도!, 너도!"

메르스 환자가 명지병원에 있다는 소문이 퍼진 후 어려움이 생긴 것은 병원 현장만이 아니었다. 감염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맞벌이 가정의 어머니들은 난처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은평구, 강서구, 그리고 고양시 등지에서 출근하는 명지병원 직원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자녀를 보내지 말아달라는 권유를 받기 시작했다. 명지병원 직원들의 자녀가 다니는 직장 어린이집에서조차 등원 중지 요청을 받기도 했다.

병원의 많은 직원들이 처음으로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새로운 도전과 장면에 놓였다고 느꼈다. 비로소 자신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감염병 현장에 서 있고, 이로 인해 차별과 근거 없는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얼마간 그런 요구가 있다가 비록 사라졌지만 직원들의 속마음은 무척이나 아프고 힘들었다. 아울러 자신은 의료인이기 때문에 감당해야할 몫이 있다는 다른 자각도 생겨났다.

대규모 감염병의 현장에서 우리는 전선에 서 있는 의료인이며, 이 감염병의 영향은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까지 널리 퍼진다. 이로 인해 생명을 걸어야하는 상황도 발생할 뿐 아니라 지역 내에서는 차별의 대상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결국 동병상련의 아픔이 있는 병원내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고충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도! 나도! 하며 모두 마음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런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어 힐링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우리는 포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명지병원은 다섯 명의 메르스 환자를 받아 모두 완치시켜 집으로 돌려 보내고, 의료진 감염은 제로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병원 경영 실적이 곤두박질 치는 직격탄으로 돌아왔다. 메르스 감염을 우려하는 환자들이 병원 출입을 삼갔다. 어느 병원이나 일어난 현상이지만, 메르스 치료 병원들의 피해는 더 심각했다. 평소 외래객으로 북적이던 1층 로비는 한산해졌다. 그만큼 병원 수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한달여 동안 메르스 환자를 돌보느라 고생한 음압병동 의료진 등에게 적절한 포상을 해야 한다는 마음은 모든 직원이 같았다. 그러나 정작 포상 대상자들은 이런 동향을 전해듣고 "우리는 포상을 받을 수 없다"고 나섰다. 경영 악화로 인해 7월 직원들의 월급 일부가 지급 유예된 상황에서 본인들만 포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 같이 고생했고, 우리 때문에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 나갔는데 어떻게 포상을 받느냐"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메르스가 남긴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것이다. 당신들 때문이 아니라는 설명에도 그들의 주장은 완고했다. 결국 고집을 꺽을 수 없었다.

전우애 한편에는 직원들의 상실감과 소외감 등 마음의 생채기도 자리하고 있었다. 메르스 치료 중에 정신건강의학과가 주체가 돼 명지병원 직원들을 위한 심리 회복 프로그램(resilience, 속앓이 미팅)을 준비했다. 직원들의 마음에 용기를 심어줘야 메르스 이후를 준비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상처입고 치유받지 못한 직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속앓이 미팅'이라고 명명된 심리회복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속앓이 프로그램으로 속풀이 하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명지병원 환자공감센터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직원들에게 메르스로 인한 스트레스와 충격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다수 직원들이 메르스 사태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메르스로 인해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여러 일들이 그들을 서운하게 했고, 그로 인해 시퍼렇게 마음에 멍이 번져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병원 경영진의 제안으로 전직원 속앓이 프로그램이 기획됐다. 팀장급 이상 간부들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무엇이 힘들고, 왜 힘들고, 서로 어떻게 이 힘든 것들을 극복해나가야 하는지를 나누는 속앓이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우선 그 의미를 공유하고, 각자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며 포스트잇에 적도록 했다. 그 후 토론 가이드에 기초해서 서로를 발견하고 힘을 얻게끔 하는 의우애 게시판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90분 가량 만남을 이어 갔다. 아울러 이 자리에 함께 한 것을 기념하는 사진촬영, 인증샷을 찍어서 올리기도 했다.

형식적이거나 겉돌기만 할 것 같던 속앓이 토론은 직원들이 겪고 있고, 겪어냈던 개인사 이야기부터 병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진솔한 자리로 발전했다. 힘들었던 문제들이 속앓이 게시판을 통해 공유됐고, 의우애 게시판을 통해 공감과 희망 연대가 이뤄졌다. 퇴근 이후 진행된 모임이 모두의 멍든 속마음을 마사지해주듯 풀어내는 속풀이 자리가 됐다.

반전의 시작, 메르스 의료진 응원 플래시몹

메르스 속앓이 토론을 하면서 의우애를 다진 이후, 많은 직원들은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현장에서 묵묵히 진료를 하며 환자 곁을 지킨 의료진들에 대해 더 큰 연대감을 가지게 됐다. 의료진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을 격려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기획되었다. 가장 단순하지만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일들은 SNS를 통한 의료진 응원 메시지 전달이었다.

일부 과에서 먼저 시작된, '대한민국 의료진 파이팅!'이 점차 여러 부서로 옮겨갔다. 명지병원 감염팀의 당당하고 결연한 모습이 직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도 이런 움직임이 일어난 큰 자극요인이 되었다. 우리 의료진은 두려움 속에서 감염병 현장의 생사 갈림길 속에서 환자 곁을 떠나지 않는 메르스 전선의 의병들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 이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된 것이 메르스 의료진을 위한 플래쉬몹과 병원 로비에서 진행된 그린 리본 캠페인이었다.

병원 내 조직인 장미특공대, 환자공감센터, 예술치유센터 직원들의 자발적인 재능 기여가 있었고, 플래쉬몹에 쓰인 음악 선정과 개사 작업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서남대 의대생들도 동참하기로 했다. "메르스, 메르스, 물러가라" 송대관의 '유행가'라는 노래를 개사한 것은 율동이 어려워서 안무 도중 사라졌다.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도 개사 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결국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개사한 것이 간단한 율동과 함께 선택이 되었다. 동영상을 통해 각 팀에서 연습을 한 후 플래시몹 D데이와 시간이 정해졌다. 70여명이 넘는 직원들과 서남의대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멋진 공연이 펼쳐졌다. 이 플래쉬몹은 유튜브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고, 대한민국 의료진에게 작은 선물과 위로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메르스로 의사 소통의 혁신 단추를 채우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속앓이 프로그램 이후 한층 더 편해진 분위기 속에서 명지병원은 새로운 제안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확대 간부회의 주제 또한 당연하게 메르스를 삼게 되었다. 이제 메르스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통찰력을 갖고 메르스 사태와 더불어 이후 상황을 준비할 수 있는지 각종 대안을 제시하기로 하였다.

메르스 사태의 경과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와 일정이 정리됐다. 의학적인 면부터 심리적인 부분까지 짚어보는 발표가 이루어졌다. 이어진 분임토의는 여려 관련 주제를 놓고 진행됐다. 팀장급 이상 직원들은 위기발생시의 의사 소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보의 공개부터 대처, 관리,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제도적인 부분까지 논의가 다루어졌다. 분임토의와 결과 발표로부터 이어진 회의를 통해 새로운 비젼을 만들고 다양한 토의가 이루어졌다. 메르스로 뜻밖의 소통 부족을 절감했고, 메르스를 통해 새로운 소통의 혁신 단추가 채워졌다. 그리고 메르스 종식까지 우리 내부의 혁신 과제들을 점검하고 결의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메르스로 얻은 최대의 소득은 의료진 사이의 전우애 같은 의우애 연대감이고, 병원 전체 구성원 간의 소통 혁신과 공감이다.

“메르스가 우리에게는 오지 않았으면”했던 솔직한 심정

메르스 사태를 경험한 결과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외부의 분야별 전문가들을 초대한 가운데 평가회 형식의 토론회도 개최됐다.

9월 29일 명지병원 권역응급 회의실에는 이왕준 이사장과 김세철 의료원장, 김형수 병원장 등 경영진과 이꽃실 감염내과 교수, 간호부장 등 메르스 일선에 섰던 의료진들이 모였다. 여기에 청년의사신문의 박재영 주간, 국내 최고의 위기관리 전문가 김호 대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유민영 대표가 함께했다. 이들은 명지병원 구성원들이 진솔하게 내놓은 메르스 대응 과정을 청취하고 각자의 전문적인 평가를 들려줌으로써 회복과 개선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날 회의는 이왕준 이사장의 발언으로 시작했다. 그는 “솔직히 메르스가 우리 병원까지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며 “인간으로서 피하고 싶다는 심리적인 장벽이 있었다”고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런 생각에 첫 환자를 수용 요청을 받고 준비에 들어갔던 5월 27일은 물론 초기 며칠 동안 본격적인 대책 회의를 갖지 못 했던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이후 6월 2일 첫 대책회의를 소집해 임직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체계적인 대응에 들어갔지만 초기 골든 타임에 정보 공개 수준을 결정하고 공식 상황실을 운영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을 밝히고 싶은 심정이 메르스 백서를 제작하게 된 동기 중의 하나라고 이 이사장은 밝혔다.

김세철 의료원장도 “직원들조차 음압 격리병동이 어떤 기능을 갖추었는지 모르고 있었다”며 “직원들과 의대생 등에게 올바른 교육과 정보 공개를 한 뒤 오히려 안심하는 모습을 보면서 빠른 대처를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메르스 확진자 5명을 완치시켜 언론에 의해 ‘여자 이순신’이라 불리게 된 감염내과 이꽃실 교수는 “대응은 성공적이었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신종 감염병 대응 매뉴얼에 의사소통 관련 내용도 추가되어야 함을 요청했다.

명지병원 구성원들의 반성과 인간적인 회한을 청취한 위기관리 전문가 김호 대표는 명지병원이 메르스 백서를 발간해 반성을 기록하고 배운 점을 국내 의료계 전반과 함께 나누어야 함을 권고했다. 그를 통해 똑같은 상황에 직면할 경우 무엇을 다르게 대응할지를 고민하고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제부터는 지역 사회에 신뢰감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유민영 대표는 “시민 입장에서 병원의 역할과 메르스의 체감도를 생각해볼 것”을 주문했다. 지역 사회 내에서 명지병원이 얼마나 안전한 병원인지를 알림으로써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병원의 역할이라는 당부였다.

청년의사신문 박재영 주간도 김호 대표와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백서를 통해 잘못됐던 점까지 완전히 공개해 스스로 발전의 기회로 삼고 타 의료기관들도 참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총평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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